USA Diary : 미국 생활 일기/미국 초등맘 일상의 기록

아빠도 그림을 좋아한다. 추억이 되는 사랑하는 이와의 미술관 데이트.

jenkang 2024. 9. 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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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으로의 피서.
코로나 이후 미술관 방문 상승률이 영화관 보다 높다고 한다. 이제 집에서 편하게 볼 수 있는 영상과 달리 작품은 여전히 현장감이 우선시된다. 일방향적 전달 매체가 지겨워지고, 지면에서의 무한 상상력도 답답함이 느껴질 때면, 내가 볼 수 있는 만큼 보고 느끼는 예술품 앞으로 하나 둘 모여든다.

미술관에 늘 목말라 있지만 일상 속에서 이벤트로 여겨지는 미술관 가기는 나름 일정을 빼놔야 하는 일이다. 혼자 오랫동안 사색하는 시간도, 마음 맞는 이와 함께 교감하는 시간도. 모두 작품 안에 내재된 영겁의 시간의 힘을 빌려 우리의 시간에 색을 더한다. 미술관을 가는 것 자체가 나는 오늘 새로운 기운을 받겠다, 마음 먹는 것과 같다.


친구와의 미술관.
올해는 역시 미술관 이벤트를 기다리던 친구들과 먼저 미술관 데이트를 했다. 뭉크의 우울하고 불안한 정서가 담긴 피오르드해안의 핏빛 하늘과 다양한 판화버전의 절규 시리즈가 전시된 예술의전당 뭉크전. 북유럽작가들의 고요한 자연과 조금 뭉툭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따뜻한 시선이 담긴 북유럽인상주의전. 두 전시회 모두 북유럽 키워드가 겹쳤다. 웅장한 자연 속에서 인간들이 각자 상황에 따라 느끼는 감정들이 예술가의 눈을 통해 영원으로 각인 된다.


어렸을때 어머니와 여동생의 죽음을 경험했던 뭉크는 자신이 죽음을 불러오는 존재라고 믿었고, 불안정한 인간에 대한 믿음은 불안정한 사랑의 형태로 요동쳤다. 자신의 감정을 예술로 표현하는 작가의 해소감은 얼마나 클까. 위대한 예술가에게 좌절은 필수 라는 것이 어느새 공식처럼 다가온다. 그들의 절망이 후대의 사람들에게 간접경험이 된다는 것은 잔인하지만 예술가의 특권으로도 느껴진다.



들판에 내 놓은 일상과 행복의 감정을 겹겹이 담아놓은 북유럽인상주의 전시는 꽃밭에 누웠듯한 행복감을 주었다. 전시회 작품이 그려진 장소를 표기한 지도를 보며, 친구와 서로의 유럽여행 여정을 되새기고. 이케아 창업자에게 영감을 준 창의적인 하우스를 만들고 그려낸 화가의 작품을 보며, 곧 결혼을 앞둔 친구의 해피하우스를 떠올릴수 있었다. 마지막엔 우연히 휩쓸려 듣게 된 도스튼 강의에서 말씀해주신, “Here and Now” 지난 과거에 연연하지도,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불안해하지도 말고. 지금 여기. 에 지내는 기쁨을 다시금 새기며 전시를 마무리 하였다.


엄마와의 미술관.
따뜻하고 부드러운 풍경을 좋아하는 엄마와 그러한 느낌의 작품들을 종종 보러간다. 집에서 예술의 전당 가기는 나름의 여정이지만 그 시간 모두 추억거리이다. 예술의 전당은 전시관이 다양해서 언제 가든 보고싶은 전시가 늘 하나쯤은 있다. 엄마가 좋아하는 꽃이 가득하고 우거진 풍경의 그림을 보고, 한식당에서 오손도손 점심을 먹고 나오면 오랫동안 무언가 꽉찬 느낌이다. 그렇게 모녀 미술관 데이트는 나름 연례행사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여름방학 미술관.
한국에서 학원이다 여행이다 약속이다 바쁜일정에 쉴새 없이 돌아가던 아이와 나의 일상이, 미국에 돌아가는 주가 되니까 쉬이 정리 되었다. 그 정신 없던 일상을, 늘 그러셨던 것처럼 촘촘하게 메꿔주시던 부모님. 양가 부모님과 가족들의 사랑으로 이번 여름방학도 몸도 마음 꽉 채워졌다. 
 
아이와 한국 일정 중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위시리스트가 있었다. 마지막 주에 드디어 시간이 나서 엄마와 아이와 미술관을 가려 했는데, 마침 아빠도 쉬는 날이셔서 함께 가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아빠랑 미술관 간적은 한번도 없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 미술관 앞에서 놀았던 기억은 있는데, 함께 전시를 관람한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운전하시겠다는 아빠를 다독이고, 내가 운전대를 잡고 온 가족과 함께 과천대공원으로 향했다. 미술관에 가는 길은 숲같은 길이 펼쳐져서 드라이브하는 즐거움도 컸다. 녹음이 푸르른 미술관 앞 광경은 엄마 아빠를 입구부터 즐겁게 해주었다. 어렸을 때 부터 그 자리에 있는 입을 빼꼼빼꼼 벌리며 소리내는 철근 아저씨를 보며, 아이는 즐겁게 따라하였다. 정말 오래 계시는 아저씨이다. 국립이 붙으면 전국 어디보다 잔디가 잘 관리 되는 것 같은데, 과천미술관도 틈 하나 안보이는 정원관리로 엄마 아빠의 눈을 즐겁게 하였다. 
 
기획전시 중 <1960-70년대 구상회화> 전이 부모님 취향에 맞을 것 같았다. 65세가 넘으신 아빠와 어린 아이는 공짜 티켓을 받고, 엄마와 나는 2,000원 입장권을 내고 2층 전시실로 향했다. 
 
 
한국의 구상회화, 인상주의  
외국에서 보았던, 혹은 우리나라에 초대된 외국작품에서 보았던 그림 중에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화풍은 인상주의일 것이다. 모네, 마네, 르누아르 등으로 대표되는 인상주의 화풍은 당시에는 충격적인 변화였지만, 사진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그 오묘한 빛과 찰나에 대한 작가의 감상의 해석으로 현대에 와서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미술사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인상주의가 붙거나, 유명한 대규모 기획전시는 늘 문전성시를 이루고, 그걸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예술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그것과 또 다른 매력에 많은 사람들이 심미적인 만족감을 느끼러 미술관을 간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종종 열리는 한국작가들의 작품 이외에, 이렇게 한국 작가들의 작품만 따로 전시한 기획전에는 처음 온 것 같았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이루어진 60-70년대 구상회화 전시 작가들의 작품은 내게 아주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사실주의, 인상주의 화풍으로 이루어진 구상미술 작품들은 우리나라 60-70년대 생활상과 풍경을 사실적으로 담아놓았다. 대한민국의 다양한 산천초목의 모습, 그 속에서 일상을 일구어 나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담담히 그려놓은 그림들은 외국그림에서 느꼈던 감동과 같은 맥락이였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발견한 따뜻한 시선이 그림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었다.
 
멀리가 아니라 이곳을 먼저 사랑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였다.
 
 
아빠와 미술관.
멋모르는 아이는 작품 몇점을 보다 편한 의자에 앉아서 게임을 하고. 아빠와 엄마는 열심히 그림을 따라 감상하셨다. 
맘에 드는 그림을 발견하면 한참 그림 앞에 서있는 아빠의 모습이, 이 전시와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카메라에 담아낸 작품을 보고, 아빠도 그 작품을 찍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아빠와 미술관은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 참 어울리는 조합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왜 생각을 못했을까. 아빠도 미술관을 좋아할 수 있다는 걸. 
크레파스를 사주던 아빠에게도 이제 종종 미술관 데이트를 신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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